오늘 한국경제신문에 나온 유튜버 시간여행TV 김민교 씨의 기사를 보며
무극선생 이승조님과 주식농부 박영옥,
최근 피씨디렉트 5% 이상 주주 공시로
주목 받는 유튜버 시간여행TV 김민교씨
셋의 주식 투자 관점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여행TV 김민교 씨는 주식농부 박영옥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시간여행이란 닉네임을 쓰는게 무극선생님 라인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200억대 주식 굴리는 대학생 '슈퍼개미'
200억대 주식 굴리는 대학생 '슈퍼개미', 코스닥 4개사 5% 지분 공시한 김민규씨 "남들과 다르게 투자하는 소신 필요" 소프트캠프·피씨디렉트 등 보유 '가치투자' 스타일 지향 꾸준한 실적에 부채 적은 기업 자신이 잘 아는 기업 등에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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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주식 고수]“1억 투자, 57억 번 비결? 좋은 주식 하나 사서 3년 이상 ‘시간’에 묻어두세요” 2010.12.06 - 주간조선
‘무극선생’ 이승조
초보시절 57억 횡재, 오만 떨다 빚더미에
투자정보 ARS 사업으로 재기 발판
개미들 실패 않는 방법은 ‘시간여행’뿐
몇 번의 위기로 시장 튼튼해져 1750선은 버틸 것
감정 배제하고 기계적인 매매도 필요
규제완화 혜택·독점자산 가진 기업에 묻어둬라!
“주식으로 돈 날린 경험만 있으세요? 그럼 수능시험 문제 풀듯 기업을 분석하고 혹 틀리진 않았는지 몇 번이고 고민해 보세요. 고민이 끝났다면 그렇게 고민한 주식 10종목쯤 사보세요. 그리곤 곰이 겨울잠을 자듯 계좌잔고도, 그래프도, 시황판도 보지 마시고 3~5년 ‘푹~’ 동면(冬眠) 시켜 보세요. 3~5년 후 이렇게 묵힌 계좌를 열어봤을 때 10종목 중 7~8종목이 기대에 못 미칠지도 모릅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나머지 2~3종목이 기대를 저버린 7~8종목을 채워주고도 남을 만큼 달콤한 열매를 줄 테니까요. 개미가 주식판에서 잃지 않는 방법이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기업의 주식을 사서 시간에 묻어두는 겁니다. 저는 이걸 ‘시간여행’이라고 부르지요.”
‘무극(無極)선생’으로 알려진 재야고수 이승조(52)씨의 말이다. 국내 리서치센터의 원조로 불리는 대우증권 조사부(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투자분석 담당이었다는 배경과 1990년대 중반, 주식투자 강사였던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한국 재야 주식고수들 중 주식투자와 기업분석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가장 탄탄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경영, 경제, 산업, 시황 등과는 무관할 것 같은 인문학, 자연과학까지 망라해 주가의 변동성을 찾아내는 ‘복잡계 이론’과 종목과 시황의 추세를 분석해 매수와 매도를 판단하는 ‘추세추종원리’ 등 그의 투자 이론은 제도권과 재야를 막론하고 ‘투자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극선생’ 이승조씨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주상복합 빌딩 롯데엠파이어 25층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현재 이승조씨는 직접 투자에 나서기보단 그의 투자 철학을 이을 제자들을 키우는 일과 지난 60여년 한국 주식시장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주식 초짜 이승조, 57억원 횡재를 하다
오래된 도서관에 온 듯 산업·기업분석이나 주식투자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심리학, 인문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가득한 그의 방에서 그와 마주 앉아 만 26년을 주식판에서 살아온 ‘무극선생’의 주식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에게 개미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웃으며 “벌 생각보다 잃지 않을 생각을 먼저 해 보는 게 어떨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워런 버핏이 ‘절대 손해 보지 않을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새지 않아야 수익이 생기는 것이고 그 수익이 쌓이고 쌓여야 큰 목돈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돈을 잃지 않는 투자, 사실 저도 이걸 알기까지 꽤 많은 시간과 수업료를 내야 했어요. 그렇게 얻은 결론이 결국 시간에 돈을 묻고 세월에 투자하는 ‘시간여행’이라는 거였습니다.”
그와 함께 한 시간 내내 그는 “실패하지 않는 투자는 ‘시간여행’뿐이라며 ‘시간에 묻어 둘 것’을 강조했다. 그는 ‘시간여행’이 왜 가장 안전하고, 훌륭한 투자인지를 이해하는 데 자신의 과거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무극선생’이 주식을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학사장교 제대 후 대우증권 조사부의 분석파트(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 둥지를 틀면서다. 당시 그에게 주어진 일은 국내외 경영, 경제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와 각종 신문을 읽고, 정리해 선배 애널리스트들의 시황, 산업·기업 분석에 참고할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드는 일이었다.
“DB작업을 하며 본 수많은 책과 보고서가 자연스레 주식 이론을 공부하는 교재가 됐어요. 정보도 많이 접할 수 있었고요. 1985년이었는데 보고서 중에 정부가 세운 자본자유화 5개년 계획이 있었어요. 국내 증권사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우겠다는 내용이 있었죠. 자산 규모 300억원 정도의 대우증권을 3000억원짜리 초대형 증권사로 키우겠다는 계획이었지요. 이 내용을 정리해 선배한테 올렸더니 ‘야, 이게 가능하냐. 요즘도 이런 말 믿는 놈이 있네’라며 핀잔만 들었습니다. 근데 제 눈에는 괜찮아 보이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돈은 물론 아버지와 장인에게까지 긁어모은 1억원으로 대우증권 주식을 샀다.
“당시 액면가 1000원이던 대우증권 주식이 800~900원에 거래됐지요. 대우증권 기업 가치에 비해 너무 낮은 금액에 거래되고 있어서 손해는 안 보겠다 싶었고 정말 정부가 300억원짜리 대우증권을 3000억원짜리로 10배만 키워 주면 시가 800원의 주가가 10배는 안돼도 최소 3배인 3000원쯤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단순한 발상이지요. 거기에 1억원을 넣었으니 참.”
대우증권 주식이 3000원이 될 때까지 팔지 않겠다는 생각에 증권예탁원에서 현물 증권을 찾아 집 장롱 속에 모셔뒀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며 한국 증시는 폭발했고 800원이던 대우증권 주식은 3000원이 아니라 무려 5만원을 넘어섰다. 대박이었다. 1989년 1억원이 57억원이 돼 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것이 좋은 주식을 시간에 묻어둔 ‘시간여행’이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
남은 건 빚 17억원과 300개의 깡통계좌
갑작스러운 횡재는 불과 31살의 그를 주식시장의 스타로 만들었다. 스스로가 당시를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던 시절’이라고 표현할 만큼 세상 무서운 게 없었던 때라고 했다.
“한 방 하고 나니까 그게 제 실력인 줄 알았어요. 어린 나이에 돈 맛을 알아서 그랬는지 잘난 체도 많이 했고 욕심도 커졌죠. 당시 대리였는데 회사 동료들이 저를 ‘사장 같은 대리’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야 내가 이렇게 (주식을) 잘하는데 왜 돈 벌어서 회사 좋은 일 시켜, 그냥 내가 (회사) 하나 차리지 뭐’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헤지펀드’ 하나 만들겠다고 사표 던졌지요. 하하하. 제 ‘곡소리’의 시작입니다.”
1989년 사표를 던진 그는 대우증권 입사 동료 한 명과 강남에 ‘L&K투자클럽’을 차렸다. 3년 만에 1억원을 57억원으로 만들었다는 유명세는 금방 위탁 자산만 500억원으로 만들었다. 당시 관리하던 계좌만 무려 300개가 넘었다. 하지만 그가 터뜨린 샴페인은 거기까지였다. 1989년 1000포인트를 오르내리던 종합주가지수는 1992년 400포인트로 폭락했고 그의 두둑했던 계좌는 깡통으로 변했다. “떨어지는 지수를 따라잡기 위해 여기저기 족집게라는 정보통들을 찾아다녔고 초단타인 스켈핑까지 하며 정말 미친 듯 사고팔았어요. 세력이 작전하듯 한두 종목으로 장난도 쳐봤지만 높아지는 회전율과 수익률은 정 반대로 가더군요. 떨어진 수익률에 자꾸 초조해졌고 딱 한 방으로 이제껏 까먹은 것 다 복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착각과 욕심에 레버리지를 있는 한도까지 다 높여서 투자했는데 더 크게 깨졌지요. 사실 제가 57억원을 번 건 트레이딩 실력이 아니라 정말 좋은 기업과 3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준 행운이었죠. 햇병아리 주식쟁이로 정통한 트레이딩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냥 차트 좀 볼 줄 알고 시황과 추세 읽을 줄 아는 게 전부였는데 제가 초절정 고수였던 걸로 착각한 거였죠. 탐욕이 부른 참사였습니다. 아마 지금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그때의 저와 같을 겁니다.”
1992년 이승조에게 남은 것은 300개가 넘는 깡통계좌와 17억원의 빚뿐이었다.
“그 사이 돈 좀 있다고 여자질까지 했어요. 이혼당하고, 집에서 쫓겨났지요. 주식판의 한 선배가 해외연수 가면서 빌려준 43㎡(13평)짜리 오피스텔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겨우 살 수 있었죠.” 1992년부터 1995년까지의 3년이 그에게는 암흑이었다고 했다. 국내 증권사와 옛 동료들은 ‘너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며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를 차갑게 대했다.
“오피스텔을 빌려줬던 선배가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가 있던 외국계 증권사 ‘동방페레그린’ 법인팀에 저를 넣어줬어요. 빚을 갚기 위해,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1998년 시작한 또 한 번의 ‘시간여행’
▲ 제자들과 함께 있는 이승조(왼쪽)씨.
동방페레그린에 근무하던 그는 좀 더 빨리 빚을 갚기 위해 지금으로 치면 ‘하우스’ 같은 ‘사설 투자소’에서 주식투자 강의를 시작했다. 이때 지금 또 한 명의 재야고수로 알려진 프로증권 김종철 대표를 만났다. “당시 저는 외국계 증권사 법인팀에 있어서 외국인 동향과 매매 기법에 밝았지요. 그런 제게 종철이가 ‘강연만 하지 말고 기관과 외국인 투자가들의 매매기법에 대해 투자 대담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걸 ARS(자동응답시스템)로 중계하자고 했어요. 당시엔 증권정보 TV도, 인터넷 증권 사이트도 없었고 투자설명회도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지요. 전국 주식쟁이들이 우리 대담을 들으려고 ARS를 수도 없이 걸면서 대박이 났어요. 덕분에 빚 갚는 속도도 빨라졌고 1억원쯤 되는 종잣돈도 모을 수 있었습니다.”
1997년 불어닥친 외환위기는 그에게 두 번째 위기와 대박을 동시에 안겨줬다. 동방페레그린이 한국발 외환위기에 파산해 버렸다. 다시 직장이 없어져 버렸다. 여전히 ‘사고뭉치’로만 그를 기억하고 있는 국내 증권사로는 갈 수 없었다.
“이때 종목정보와 시황,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ARS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무극선생’이란 필명도 이때 쓰기 시작했지요.”
그의 주식인생은 57억원의 대박이라는 흥(興)과 빚 17억원, 깡통계좌 300개라는 망(亡)이 또렷하게 갈리는 삶이었다. 투자 역시 끊임없이 사고팔던 트레이더의 삶과 시간에 가치를 묻는 시간여행자로서의 삶까지 늘 양 극단을 달렸다. 흥과 망의 경계에 서있던 그 이기에 누구보다 치우침 없는 중용(中庸)의 가치를 잘 알았다. 그 중용을 잊지 않기 위해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 앞에 ‘무극(無極)’을 붙였고 이때부터 ‘무극선생’이 된 것이다.
전화위복이었다. 족집게처럼 시황과 상승 종목을 맞힌 그는 인기가 치솟았고 그 인기 덕에 빚도 청산했다.
“기회가 보였어요. 외환위기로 몇백원 수준으로 떨어진 거의 휴지와 동급 취급을 받던 증권회사 주식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기업 가치를 평가해 보니 망하지 않을 회사만 고르면 제 가치만 회복해도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죠.” 1985년 대우증권 주식을 살 때처럼 1998년 수중에 쥔 1억원으로 증권사 주식을 몽땅 샀다. 이번에도 증권예탁원에서 현물증권을 찾아와 장롱에 고이 모셔뒀다. “눈에 보이면 매매를 할 것 같아 아예 매매를 못할 방법을 동원한 거지요.”
그렇게 다시 3년, 두 번째 대박이 찾아왔다. 1억원이 20억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1989년이나 2000년이나 주식으로 큰돈 안겨 준 건 끊임없는 트레이딩이 아니었어요. 단지 시장의 큰 흐름을 보고,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충분히 상승할 수 있는 좋은 종목을 사 ‘시간여행’을 시킨 것뿐이라는 걸 이때 알았습니다. 수없이 사고팔기를 반복했던 1992년의 ‘트레이더 이승조’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재야고수 ‘무극선생’ 이승조와는 완전히 다른 망가진 주식쟁이였을 뿐입니다. 가치분석과 기다림의 결정체 ‘시간여행’이 ‘무극선생’ 이승조를 만들어낸 겁니다.” 그는 자신이 재야고수로 불리기까지 ‘시간여행’이 함께 했음을 말했다.
청산가치보다 30% 디스카운트된 기업 주목
그가 말하는 ‘시간여행’은 무조건 주식을 사서 묻어 두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내재가치 분석(기본적 분석)과 시장과 종목의 추세를 확인(기술적 분석)할 줄 아는 투자기초가 있어야 한다. 그는 이것이 있어야 ‘시간여행’을 위한 30%를 채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업 가치와 매수를 위한 분석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전제로 자신의 투자 개념을 말했다.
“10대 그룹 계열사 중 ‘코스피200’에 포함된 종목 리스트를 뽑습니다. 여기서 성장성, 신기술, 미래 트렌드, 시장지배력 등을 감안한 종목을 다시 선별하지요. 통상 30여개 기업으로 압축되는데 이때부터 기업의 내재가치를 분석합니다. 이때 분석의 툴은 ‘유동자산+비유동자산(업종에 따라 반영 비율 조정 : 서비스업 50%, 장치산업 70~100%)-부채총액+이익잉여금/총발행주식’을 사용합니다. 이것을 ‘안전마진’이라고 하는데 수치가 해당기업의 ‘청산가치’보다 최소 30% 이상 디스카운트된 기업을 매수 리스트에 집어넣지요. 여기에 산업이나 경기 변동의 최소 사이클로 생각하는 40개월과 52주 최고·최저가를 반영합니다. 이 시간 동안 고가와 저가를 오가던 종목의 현재 주가가 저가에 와있다면 그 기업에는 ‘상장폐지’라는 변수만 제외하면 이미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악재와 돌발변수가 반영돼 있는 거지요. ‘바닥을 확인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분석의 기본이라고 했다. “분석이 끝나면 걸러진 기업의 미래를 몇 개의 시나리오로 그려봅니다. 삼성그룹을 예로 들면 ‘SDS가 상장되면?’ ‘에버랜드가 상장되면?’ ‘삼성 40대 기수론이 본격화하면?’ 같은 것이죠.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벤트와 연결되는 몇몇 삼성계열사 주식을 최종 매입하게 되는 거지요.”
그는 이렇게 매수한 종목이라면 최소 3년 이상 시세표와 그래프를 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쉽지 않지요. 사람인데 궁금하잖아요. 제 제자들도 못 참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 친구에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아예 매매 자체가 불가능하게 예탁원에서 주식을 현물로 찾아다 장롱에 넣어두게 합니다. 하지만 일반인은 그렇게 하기 힘들 겁니다.”
이승조씨는 일반 투자자에게는 감정을 배제시키기 위한 기계적인 매매도 필요하다고 했다.
“‘3달, 6달, 9달, 12달’을 한 사이클로 투자하세요. 한번 매입한 종목을 3달 단위로 열어보는 겁니다. 그리고 12달째 확인한 평가이익이 기대한 것 이상일 때 평가이익의 50%만 처분하세요. 물론 그 이하라면 12달째는 그대로 두고 그 다음 체크 달에 평가이익의 50%를 처분하면 됩니다. 이 사이클을 3~5번 반복하면 최소 투자원금의 2~3배 수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주식판은 점쟁이도 못 맞힌다
이 외에 몇 가지 투자법을 더 이야기 해줬지만 그가 개미투자자들을 향해 말하고 싶은 진짜 핵심은 따로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개미들이 투자에 실패하는 이유로 “전문가 흉내를 내려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밥 먹고 주식만 하는 사람도 이 판에서 돈 버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경쟁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보면 다들 주식매매 프로그램이 있어요. 이것부터 지우세요. 주식쟁이들의 영역은 그들의 영역으로 두시고 생업에 열정을 쏟으세요. 생업에 열정을 쏟을 때 오히려 더 좋은 주식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전기업종 기업에서 열정적으로 20년을 일한 사람과 주식쟁이 중 누가 더 좋은 종목을 고를 수 있을까요. 전기회사 20년차인 분입니다. 이분만큼 전기산업과, 기업, 기술경쟁력을 아는 주식전문가는 없어요. 이분이 선택하는 회사가 전기에 관한한 최고의 회사입니다. 주식에서도 최고의 주식이란 뜻이죠.”
그는 “시장을 맞히려고 하지 말라”는 말도 했다.
“26년을 이 판에서 살며 주식고수 소리 듣는 저 역시 반도 못 맞힙니다. 그나마 이것도 변동성이 작은 시장에서 최고의 컨디션일 때예요. 점쟁이도 주식판 돌아가는 건 절대 못 맞힙니다. 근데 개미들은 마치 내일을 아는 것처럼 시장을 맞히려고 합니다. 주식판이라는 데가 노상 주식쟁이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면서 거래량 키우고 테마주며 폭등주를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시장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주식쟁이들보다 더 빠른 매매시점을 잡을 수 있는 10만명 중의 한 명이 아니라면 차라리 한 발짝 떨어져 시장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보세요.”
인터뷰 말미 그는 지난 몇 년의 위기가 우리 시장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현재 우리 기업의 이익과 정부의 재정 능력이면 최악의 경우라도 코스피 1750선은 든든히 지지해 줄 것이란 말로 우리 시장의 미래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이렇게 안정적인 시기에 ‘시간여행’을 할 좋은 주식을 찾아야 한다며 자신이라면 규제완화의 혜택을 받을 기업이나 타 기업이 가질 수 없는 독점 자산을 가진 기업들 중에서 찾아보겠다며 웃었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34100022
“1억 투자, 57억 번 비결? 좋은 주식 하나 사서 3년 이상 ‘시간’에 묻어두세요”
‘무극선생’ 이승조
week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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